2009년 04월 28일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2008)
365일 집 앞에 걸려있는 성조기
서슴없이 꺼내드는 총
젊은이들을 향한 못마땅한 으르렁거림
처음, 영화의 ‘한국 전쟁’이라는 키워드를 봤을 때, 이 작품 역시 감독의 전 작들 ‘아버지의 깃발’이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같은 맥락의 전쟁을 겪은 인간의 상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었다. 물론, 영화속에서 전쟁의 이야기가 빠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감독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얼핏 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보이는 이 영화는 먼저, 미국 내의 다양한 인종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이 사는 곳은 일명 ‘위험한 동네’라 불리는, 미국이지만 동양인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위험한 동네’에 있는 다인종들은 서로를 향해 “이곳은 우리의 것이니 여기서 나가라”고 소리치며 총을 겨눈다.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그들은 뚜렷한 색깔을 내타낸다. 흑인은 건들건들 'Yo~'를 내뱉고, 동양인들은 지신들의 예의만을 중요시하거나 나약하며, 백인들은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또한, 반면에 영화는 이러한 뚜렷한 ‘나뉨’과 함께 ‘같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같음’이란 것이 ‘모든 인종이 같다’라는 뜻은 아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라는 말이 붙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주인공의 ‘으르렁거림’의 상대는 미국인이 아닌 이들에게만 향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사회적 지위여부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바라보기에 ‘괜찮지 않은’ 모든 이들을 향한 ‘으르렁거림’일 뿐이다. 다시말해, 영화 속 자신의 죽음만을 기다리며 그랜토리노를 탐내는 친손녀의 모습과 갱단의 협박으로 그랜토리노를 훔치려던 타오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라고 보는 것이 주인공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친절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자신이 연기한 한 노인의 마지막 생애를 빚대어 그려내고 있으니까.

# by | 2009/04/28 17:45 | 리뷰랄까요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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